이 드라마의 성적표는 다음과 같다.

 

이제 착해지기로 작정한 사람들에겐

그만 착해지기로 작정한 사람들에겐


 

이제 상처는 면역력 그 내성을 우리에게 길러주어

다음을 현명하게 대비케 해주는 것이 아닌

그저 외면만을 우리에게 길러주는 듯하다.

흉터도 끔찍한 기억도 아닌.

맞다! 모른 척 해버리면 아플 일도 없을 테니

끝내 흉질일도 없을 테니

그게 마음이든 그게 몸뚱이든.

 

자연을 사는 모든 것들이 가지고 있다는 자기만의 보호색

자연이 아닌 인간의 숲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가진 보호색은

바로 그 외면인 것이다.

 

거리에 흘러넘치는 노래나 영화뿐 아니라

인간이 창작해내는 웬만한 그럭저럭의 것들을 보면

순수에 목마른 지금이다.

목이마른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은 오래전 언젠가 우린 순수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염원이 언제부턴가 소원해져 아니 불가능해지며

우린 노래로 만들어 부르기 시작했을 것이다.

뭐든 그리운 걸 노래하는 버릇을 가진 인간들이다보니

우린 분명 오래 전 어느 때, 순수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린 지체장애를 가져야만 순수해질 수 있는 단계까지 왔다.

 

요즘세상 껍데기 멀쩡한 놈치고 착한 놈이 없기 때문에

요즘세상 껍데기 착한 년치고 말짱한 년이 없기 때문에

 

강하다는 것은 뭘까?

힘이 막강해 거침이 없는 걸 뜻하는 걸까?

아니라면, 자기 자신을 이겨낸 사람을 뜻하는 걸까?

모르긴 해도 강하다는 것은 한없이 부드러울 줄 아는 사람일 것이다.

집채만 한 고난과 역경이 폭풍 쳐온다 할지라도 바로 그 앞에서

부드러울 줄 아는 사람 말이다.

울어버린다거나 화를 낸다는 건 세 살 먹은 아이들도 할 수 있는 시시한 짓이니까.

 

상처로 그래서 외면을 하지 않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먼저 부드러울 줄 아는 여유와 한가로움 뿐이다.

 이는 최선에는 이미 `최선`이란 없다는 걸 깨달아야 겨우 가능하다.

하나의 사람을 한가롭고 여유로워 더없이 부드러울 수 있게 하는 진리란

결국 그뿐이다.

 

우린 그걸 할 줄 모르게 되어버렸거나 또는 잊거나 잃어버린 단계까지 온 것이다.

2013. 지금 시대의 사람들은 그런 건 특별난 자들에 국한되어 나타나는

기현상쯤으로 받아드려지고 있는 중인 것이다.

 

`나처럼` 보통의 열성인자를 타고 난 놈들에겐 전혀 찾아볼 수 업게 된

`순수`를 천지간 보편이란 그 쌍것들의 뇌리에 심어주기 위해선

그 아무리 고귀. 숭고한 것일지라도 조금의 장애를 가져야만 비로소 

전달 가능한 시대를 우린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이 드라마는 판타지물이다.

마법과 장풍을 대신해 주인공은 `순수`라는 실전된 무공을 가지고

상처로 인해 외면이란 사파의 무공을 익힌 마두들을 감화시켜 끝내 변화로 이끌어내는

재주를 가지고 있는 그러나 우리기준에선 그저 하나의 애처로운 병신일 뿐인

정통활극인 것이다.

 

순수에 목마른 지금

목이 마르다는 것은 저 어느 때 우린 순수의 물 속에서 따사로웠기 때문이리라.

 

요즘세상 껍데기 멀쩡한 놈치고 순수한 놈이 없기 때문에

요즘세상 껍데기 순수한 년치고 말짱한 년이 없기 때문에

 

... 생겨나는 병신스러운 이야기들

 

이제 착해지기로 작정한 사람들에겐

그만 착해지기로 작정한 사람들에겐

 

신선하거나 불편하거나...

나처럼 짜증만나거나 


 

난 회를 거듭할 수록

단 한번 감명이란 공명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저 난 회를 거듭할 수록

계속 되는 나의 짜증과 싸우느라 바빴을 뿐이다.

 

나의 병신스러움은 이제 무르익었다.

인간의 숲을 살아가기엔 족해 넘쳐날 정도로 딱.

 


 

외면과 무관심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거기엔 분명 `인식`이란 놈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Reviewe > Dram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도전  (0) 2014.01.12
응답하라 1994  (0) 2013.11.02
결혼의 여신  (0) 2013.07.24
그 겨울 바람이 분다  (0) 2013.03.11
가시나무새  (0) 2013.01.2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