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기 전 개라시기자들이 뭣 때문에 이 영화를 이렇게 까나

`꼭 봐야겠군.` 했었는데, 과연 보기를 잘한 거 같다.

요즘 같은 시대 기자나부랭이들이 내놓는 기사의 반대로 생각. 실천하는 것이

그나마 인간구실하며 사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음을 새삼 느겼다.

 

`영화가 지나치게 정치적이며...` 보통 이런 식으로 개라시들은 리뷰를 섞어 토해냈다.

우리나라 기자들은 그야말로 `꿀보`들 같단 생각을 떨쳐낼 수 없게 하는 문장이다.

 

사회적인거치고 정치적이지 않는 게 또 무엇이고 또 얼마일까?

그리고 영화는 정치적이면 안 될 이유는 또 무어란 말인가?

그 자체만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자정`의 능력을 길러줄 것인데

배움이란 그런 것이 아닌가?

틀린 걸 아무리 가져다 댄들 결국 우린 자기에 맞게 고쳐서 사용할 건 사용하고 

도저히 걸러버린 건 쓰레기통에 버리며 살아들 가지 않나?

기자들의 개같은 염려는 도대체 어느 구덩이에 묻어두었던 개뼉다귄가.

 

대중에겐 그런 능력이 없을 거란 바로 그 생각이 틀려먹었다고 생각하지 않나?

답답한 노릇이다. 요즘 리뷰나 몇 줄 평은 입금만 확인되면 

원하는 논조로 얼마든지 써주나 보다.

 

난 무비판적사고보다 막비판적사고가 더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왜`라는 필터링이 없이 무조건 받아드리는 `순응`이란

노예들이나 하는 짓이기 때문이다.

노예들은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시키는 것만 열심히 그리고 잘해내면

그날 밤, 밥걱정. 배고픔 없이 행복하게 꿈나라로 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씹기 바빴던 기자들은 아마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인간들인 것 같다.

통장에 꽂히는 동그라미에 영혼의 가랑일 벌리고 사는 천박한 것들

그게 인생이요. 살아감의 최선이라 여기는 불쌍한 병신들 말이다.

 

쥐죽은 듯 고요히 흐르는 잔잔히 흐르는 강물과도 같은 삶에

무슨 역동의 생명이 살 수 있겠는가? 

그건 그냥 죽음일 뿐이다. 절대 그런 곳에 평온은 깃들지 않는다.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그것이야 말로 삶이며 살아있음이다.

그리고 그런 곳이어야만 평온이 찾아올 수 있는 것이고

`순응`은 패배며 곧 죽음이다.

 

`왜`라는 시선을 가지고 대하는 세상은 그만으로도 충분히 피곤함을 불러오지만

그런 최소한의 안전장치조차 없이 요즘을 살기엔 저런 불쌍한 병신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우린 이제라도 서둘러 `왜`라는 썬팅지를

안구에 한 꺼풀 바르고 살아가야한다.

바로 그렇게 세상을 보는 눈을 습관을 길러야하는 것이다.

 

물음표 하나 가지고 사물을 보면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음은 당연하다.

`왜`는 먼 것을 가깝게 보여주고 그렇게 가까워진 `먼 것`을 발판으로 하여

우린 비로소 더 먼 것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훈련은 어려서부터 꾸준히 해주어야 한다.

두뇌활성에도 좋을 것이다. 아무런 생각 없이 꾸역꾸역 순응만 해대는

돼지보단 적어도 말이다.

 

믿음도 의심이란 보호막을 뚫어야만 우리들 마음에 자리 잡을 수 있는 것처럼 

`왜`란 바로 그 보호막을 좀 더 커다랗고 두껍게 만들어주는 일종의 장치인 것이다.

일찍이 우리들 가슴에 `왜` 그 하나만 가지고 살아왔더라도 세상은 적어도 지금보단

더 훌륭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남쪽으로 튀어`의 유일한 단점은 러닝타임에 비해 너무 많은 걸

녹이려고 했다는 하나 뿐이다. 정말 그뿐인 아주 훌륭한 영화다.

감독이 던진 `왜`라는 질문 중 두어 개만 줄이고 몇 가지만 엄선해 

심층적으로 부각시켰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있을 수 있겠으나 그 외에 

개라시들의 평은 그야말로 개소리일 뿐이란 거다. 

 

그 개소리를 빌어 말하자면 그런 행위 또한 너무나도 정치적인

가위질일 수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짓일지도 모른다.

아니 불필요한 짓이다.

`왜`를 통해 바라보는 눈을 꾸준히 단련해온 자들이라면 얼마든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고 이제 한창 연습중인 병아리들 훈련용으로도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맞다

결국 지키기 위해선

타협과의 싸움만 끝에 남는다

바로 그 유혹과의 싸움

지친 몸과 마음을 녹여줄 사탕하나

입에 넣거나

녹아 없어질 때까지 노려보거나

 

나도 꿈을 꾼다

어딘가 있을 율도국을

그렇다고 내가

낭만의 아나키스트는 아니다

그저 멀지도 가깝지도 않는 곳에

자그마한 초가집을 짓고 살아가고 있을 뿐인

고독이다

 

`감독이 누구지`하는 흥미로움에

1960 임순례

 

`동지`란 말을 부정적으로 느끼는 거 같았지만

변절하지 않는 한 `동지`란 몇 없는 희귀종들이 요즘을 버텨내는데

참으로 필요한 울타리가 아닌가 한다.

 

변치 않는다면 나 또한 그대 동지가 되어드리겠소.

불평뿐인 노인으로만 속절없이 우리 늙지 말고

깐깡하게 노려보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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