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에 갇혀버린

희망

무도할 수밖에 없을

연산

 

추 그리고 측

 

`지대무외`하면

우린 살아갈 이유도

존재할 이유도

마땅히 없어졌어야 옳았던 게 아닐까

 

그래서 이토록 처절한 것일지도

사라져가는 것은

누려야할 찬란함 당연히 있어야

적어도 억울치는 않을 것이니

 

별이 동그란 것은

그 끝이 있기 때문

 

짓누르는 뇌옥은

절대란 테두리에 둘러싸여

막연하게 또 그윽하게

오늘도 우리에게

포기를 타협을 강요한다

진리란 이름으로

 

끝이 없다면

팽창의 당위는

영위하는 것들의 근본은

무무

 

순간이 오면

너는

인류가 그랬듯

성연이 그랬듯

다신 돌아오지 않으려는가

 

밝혀진 진리를

우리 더는 진리라 부를 수 없듯

우리에게 이름 붙여진

모두는 한낱 지식일 뿐이듯

 

미지라 이름 붙은

그곳을 밝히는 횃불 녹슬어

너를 다 태워버려도

너는 돌아오지 않으려는가

 

끝이 없다면

진리와 너는

종래 다를 게 또 무어라고

 

허나

끝이 있다면

그때부턴

우리것이 아닌

그의 것도 아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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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욕심은 왜곡을 일삼는다

무지는 시간의 것이 아니기에

어떤 세월로도 덮을 수 없는 것이기에

 

욕심은

직관이다

선함이 그러하듯

빛을 필요로 하지 않기에

그냥 우린 떠올려 그릴 수 있다

그건 마치 사랑이 그러하듯

우린 저절로 알 수가 있다

심술난 고뿔처럼

재채기처럼

신에게 훔쳐낸

우리가 감춘

그래서 유일한 우리의

 

그건

그어떤 걸로도

움직일 수 없고

꾸며낼 수 없는 것이기에

애초 우리 것이라고도

그의 것이라고도

할 수 없는

그건

 

 


 

끝까지

찬란하게

거짓을

그래서 더 야릇하고 달콤한

고뇌는

풀기 싫은

숙제처럼

엇갈림 가운데 서서

 한번 방황을 했지만

비밀로 감추기로 하자

 

Keira Knight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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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로잉

 

간만에 `병맛돋는` 미드 한편을 때렸다.

시즌1- 6부까지가 내 한계다.

 

나니아연대기를 보는 것 같다.

주인공들이 아무리 `질알`을 해도

결국 사자새끼 한마리 나타나면 그간 모든 `질알`이

진정한 질알이었음을 깨닫게 해주며 보는

사람을 허탈하게 해버리는 .. 그런

 

중권횽이 그렇게 깠던 `디워`는 사실

나니아연대기에 비하면 `플롯`이 완벽한 양반이다.

 

`기계장치를 타고 내려온 신`

 

더 팔로잉이란 드라마에선 작가가 바로 그 역할이다.

이런 식으로 전개가 된다면

`시발` 더 볼 필요가 없을 거 같아서 포기.

 

범인을 누구라도 지정할 수 있다.

인과 따윈 그야말로 `팔로잉`

뭣 같이 스토리를 이어가다가

`아니 이건 또 무슨 시츄에이숀. 저놈은 또 왜?` 하는 순간

작가는 `어 그놈도 옛날에 썸이 좀 있었어` 하는 것이다.

 

이런 걸 뭐라고 하던데 마치 게임에서의 `이스트에그`처럼

여튼 이런 식의 영화로는 최근 `나우 유 씨 미`가 있었다.

난 이런 `식`을 그냥 `눈뽕` 이라고 하는데

여튼 이 드라마 또한 내겐 눈뽕드라마 중에 하나였다.

 

도중에 포기한 리뷰를 왜 하느냐 묻는 다면

너님의 시간을 아껴주기 위함이라고 ㅠ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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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대 일

 

메타포 그리고 병신들의 향연

 

민주가 살해당하며 영화는 시작된다.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란 메시지를 던지며 영화는 끝난다.

 

너는 누구인가...

저 14인의 병신들 중 입맛에 맞는 병신을 취사선택하라고

감독은 묻는다.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연놈들치고

그 진열장에 나열된 `병신14종` 중 구미에 당기는 병신하나쯤

없을 수 없다. 그건 다름 아닌 바로 내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에.

 

적당히 비겁하고 적당히 나태하며 적당히 탐욕스러우며

또 적당히 무식하고 적당히 인내하며 적당히 사랑하며 적당히 숨만 붙은

꼬라지 고작인 바로 `나`인 것이다.

 

적어도 그런 면에서 영화는 충분히 그 뜻을 우리에게 전달해줬다고 본다.

`넌 도대체 어떤 병신이냐`라는.

그러나 영화는 개운하지 못한 여운을 남긴다.

그 찝찝함의 원인은 무얼까를 생각하다 거기에 대한 답을 찾고

화가 치솟게도 해준다. 그건 바로 마동석의 절규 때문이었다.

그 장면하나로 순간 이 영화의 모든 것은

그저 그런 `병신`이 되어버린다.

 

그 절규로 인해 영화는 끝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돼버렸다.

`씨발, 복수를 응징을 집회를 봉기를 하란 소리야 말란 소리야`

그렇다. 그냥 병신스러운 몸짓인 것이다 또 다시 지긋지긋하게.

 

죽음 앞에 잔치판을 열어도 부족할 텐데 진정 그러할 텐데

왜 날 시험에 들게 하냐며 고난을 주시냐며 울먹였다는 놈의 최후가 떠올랐다.

그것은 현신으로 행한 것들에 대한 배반이며 자기모순이다.

이렇게 살아가라 해놓고 그게 옳은 것이라 해놓고 막상 `순간`이 오자

병신스럽게 울먹이는 그놈이 생각난 것은 우연은 아니리라.

 

그 볼썽사나움에 러닝타임 내내 따르던 순수의 중생들은 병신이 되고 만다.

가더라도 웃으며 가야하는 것이다.

승복이 아닌, 해탈한 듯한 관조 그 비켜섬이 아닌

모든 걸 씹어 삼킬 듯한 부라린 눈알의 희망이어야 비로소 옳은 것이었는데

씨발스럽게도 병신스러운 절규가 고작이라니.

 

부디 속편이 나와 해명을 해줬으면 좋겠다.

변명을 해줬으면 좋겠다.

`내가 잘못 생각했노라고` 몽둥이를 들었던 그 손으로

행복한 살인을 저질러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지금시대를 사는 14종병신들 몸뚱이에 배인 그 패배감을

씻어주었으면 그래서 생전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희망에 차 거리로 뛰쳐나와

찍소리라도 한번 싸지르고 승불케 해주었으면 참으로 좋겠다.

 

민주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하지 않던가.

이제까지 그 피를 우리 등골에서 빼먹었지만

꼭 그러리란 법 또 없으니...

 

---

 

거기 한숨하나        거기 눈물하나

더 보태본들        더 묻혀본들

기울겠어        적시겠어

 

바위를 스치는 옷깃        바위에 깨지는 달걀

시간만 아까운걸        먹기도 아까운걸

 

하얀 모래알을 걸으며        노릇 향기로움 먹으며

따가운 햇살에        풍만한 뱃살에

눈살 찌푸리며        한숨 꼬집으며

 

---

 

나는 누구인가

Vs

나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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