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장면

 

하필, `정몽주`였을까?

정몽주는 어디까지나 구시대의(고려) 질서를 지키려고 했던 사람이다.

조선을 이해하기 위해선 정몽주가 아닌 `정도전`을 우린 더 알아야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고려말을 더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지금 우리가 계승. 발전 시켜온 것은 고려가 아닐 텐데

왜? 우린 이토록 `정몽주`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걸까?

 

`역사는 승자의 기록, 패자는 전설만 노래할 뿐이다`

맞다. 역사의 기록이란 승자에 의해 쓰여간다.

여기서 승자란. 조선을 건국한 태조다.

 

새로운 나라 `조선`을 만들며 그가 필요한 것은

정도전과 같은 혁명아가 아닌 `정몽주`와 같은 충신인 것이다.

죽음 앞에서도 절개를 지킬 줄 아는 충직함을 가진

 하여 정도전과 같은 자를 반역도로 몰아 숙청을 했던 것이며,

그가 쓴 모든 기록에서 정도전은 권력이양기 그 다툼에서 밀려난

역도의 모양새를 가지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정도전의 조선경국대전을 무참히 칼질하여 자신의 입맛에 맞게 잘라낸 덕분에

아쉽게도 지금 우리나라 정치판은 개판이 되어버렸다.

 

정도전이 그렸던 조선은 `반부패`의 나라였다.

 

*종묘와 사직*

좌조우사란 근정전에서 왕이 남면을 하고 앉았을 때

그 왼쪽으로 종묘가 우측으로 사직이 들어서 있다.

쉽게 얘기하자면 역대 임금님의 위패를 모시는 곳을 종묘라 한다.

(종묘에 들어서다 보면 좌측으로 조그마한 문이 있는데 거기

공민왕의 위패가 모셔져있다. 이는 상징하는 바 큰데

조선의 건국은 모반이나 무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뜻하는 것이다. 조선은 세계사에 드물게도 피를 흘리지 않고

세워진 나라다. 이를 선양이라고 하는데, 조선은 고려로부터 선양과

추대의 형식으로 세워졌다. 그래서 공민왕의 위패도 같이 모셔

대외적으로 조선의 정당성을 알리고자 한 것이다)

 

사직은 곡식과 땅의 신에게 제를 올리는 곳이다.

(사직대제 일제강점기 행하지 못해 오다가 근래 시행 중

`사직공원`이란 말 또한 사용해선 안 된다. 사직단이라 불러야한다)

 

 

내가 배울 땐, 저 네 글자 중에 두 글자가 더 붙어 있었다.

`을사보호조약` 그땐 그냥 외우기 바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슬프다.

그렇게 밖에 가르칠 수 없는 선생님과 그렇게 배워서 자란 어른들과

또 저렇게 배울 수밖에 없는 모든 교육환경이... 

 

조약이란 주권을 가진 국가간의 국제법률 관계를 설정하기 위한 명시적 합의다.

당시 우리에겐 주권이란 없었다. 빼앗겼기 때문이다.

지금 그것을 `조약`이라 불러버리면 우린 이후 조약의 불법성에 의해

벌어진 모든 불합리를 `왜`에 따질 수 없게 되는 위험천만의 짓이 되어버린다.

그것도 우리들 스스로가 ...

 

선조들은 `을사늑약`이라 불렀다.

대한제국을 강압하여. 외교권 박탈과 통감부(한국을 약탈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한

감독기관)설치 등이 주된 내용 그걸 합의한 걸 뜻하는데

어찌 그걸 `조약`이라 부를 수 있단 말인가.

이런 글자 하나라도 시간을 먹고 자라나게 되면

결국 밝히려고 해도 밝힐 수 없게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모 단체와 친일쪽바리 후손들이 득실득실한 지금 절대 그들 손에 놀아나

두 눈 커다랗게 뜨고 역사가 왜곡돼 가는 걸 지켜볼 수는 없지 않은가.

 

*한일합방(병합)*

이 또한 미친 말이다. 우린 왜놈과 나라를 단 한순간도 합친 적이 없다.

합방이란 나라를 합친다는 뜻인데. 언제 우리가 왜놈과 나라를 합치며

대한을 버린 적이 있었단 말인가. 마땅히 선조들이 부른 `경술국치`라 알고 있어야 한다.

경술년에 나라가 커다란 치욕을 당했으니 잊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로 말이다.

 

아직까지 대형 포털 여기저기 자동완성으로 노출 되는 명칭들 단어들 ...

`한일합방 100주년`이라 꺼리낌 없이 씨부리는 국해의원들을 보면

배움이란 .. 제대로 된 앎이란 얼마나 중요한지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상유십이미신불사

 

누구로 인해 박살나버린 수군을 버리고 왕은 `이순신`에게 남은 병력을 모아 

육지에서 응전하란 명을 내린다 그에 대한 충무공께서 올린 장계의 (답변)일부다.

 

`아직 열 두척의 배가 남았으며,미거한 신은 죽지 않았다.`

죽기로 싸우면 `왜놈들 또한 감히 업신 여기지 못하리라`

 

충무공의 불굴의 투지를 알리는 숱한 말씀 중에 그리고 

 명량대첩을 설명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말이 있으랴!!

 

연추(크라스키노의 원명)에서 11인과 함께

왼손 무명지를 단지 하여 태극기에 `대한독립`을 쓰다.

*현재 추카노프카: 1937년 스탈린에 의해 한인들이 강제이주 후 우크라이나인들이 거주*

 

블라디보스톡에서 우연히 이토가 온다는 것을 안 안중근은

7연발 블로닝 권총에 약실에 한발 더 넣은 8발의 담담탄을

가슴에 품고 때를 기다린다.

 

그리고 날이 밝았다.

10월 20일 대련항에서 출발한 이토는 25일 장춘에 도착한다

 21일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한 안중근은 일찍 흑룡강성 하얼빈에 당도한다.

 

하얼빈에 도착한 열차는 30여분 가까이 멈춰있다.

코코프쵸프와 북만주 이권문제를 담판 짓고 있던 이토를 환영하려 몰려든 일본인들

사이에서 기다리고 있을 안중근의 모습을 상상하면 세월이 이만큼이나 지난 지금도

괜히 심장이 쿵쾅인다.

 

드디어 사열한 의장대 사이로 키가 작고 수염이 있는

늙은놈이 안중근의 눈에 들어온다. 그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블로닝 권총을 꺼내들고 뛰어든다.

`탕.탕.탕`

세 발을 연속으로 쏘았다.

 

첫 탄환은 이토의 오른팔을 그대로 뚫고 심장에 박혔다.

두 번째 탄환은 이토의 옆구리를 뚫고 배에가 박혔다.

세 번째 탄환은 이토의 배에 정확히 박혔다.

 

안중근은 이토의 얼굴을 모른다.

`저기 쓰러지고 있는 흰수염난 놈이 이토가 아니면 어쩌지`란 생각이

불현듯 뇌리를 강타한다. 마침 쓰러진 노인을 부축하기 위해

달려드는 몇의 왜놈들이 보인다.

안중근은 다시 세 발을 쏜다.

`탕.탕.탕`

수행원 하야시

하얼빈 총영사 카와카미

만철이사 다나까

세 놈 모두 쓰러졌다.

(셋은 각 오른팔.발뒷굼치 등에 중상을 입었으나 살아남)

이후 안중근은 `꼬레아 우레` 를 외치며 헌병들에게 체포 되었다.

(`안응칠 역사`라는 안중근 본인이 쓴 일대기에 모든 정황이 고스란히 나온다

우린 지금 그걸 바로 사서 볼 수 있다.)

 

 

무한도전 참 뜻 깊은 방송이었다.

그러나 무언가 부족함을 느낀다.

 

아마도 이번 특집을 기획한 계기가 된 신사참배에 대한 요즘 학생들의 생각을 묻는

 인터뷰 때문이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만큼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을 수 있지만...

그래도 역사를 선택으로 배우는 요즘 세상에 이게 어디냐 싶기도 하다.

 

어쩌다 역사를 ... 슬프다.

무도만의 보충수업을 기대하며~

'World > Inworld'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철수!! 天命  (0) 2013.05.25
어린이집구타 해결안  (0) 2013.05.23
5.19(일) 노무현 대통령 서거 4주기  (0) 2013.05.19
힐링캠프  (0) 2013.05.14
주진우 그리고 대한민국  (0) 2013.05.1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