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인

 

사람들 중엔 어떤 안건이 생겨나면 가타부타 말이 없는 놈들이 있다.

난, 그런 놈을 싫어한다. 그런 놈들은 대게 어느 한쪽의 의견이

우세를 보여 이후 그쪽으로 걸었을 때 마찬가지로 말없이 같이 걷는다.

그러다 기대 이하의 결실을 보게 되면

보통 `, 그러게 아까 `00` 말한 쪽으로 갔었어야해.`를 시작으로

여기 저기에서 후회를 동반한 불평과 불만들이 쏟아져 나오게 되는데,

그때 애초 어느 쪽에도 자신의 생각을 밝히지 않았던

바로 `가타부타` 말이 없었던 놈들이 보란 듯 나서는 순간인 것이다.

 

그때 `그놈은` 자긴 애초 이렇게 될 줄알았다는 둥,

이미 다 예상하고  있었다는 둥 씨부린다.

이런 놈들은 사회를 살아가다보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만나게 되는데,

그야말로 똥과 같은 놈들일 뿐이라고 난 생각한다.

 

`가타부타` 말이 없었듯, 그냥 끝까지 말이 없을 순 없을까?

이런 놈을 요즘 사람들은 `세상사는 법을 아는 놈`이라고 추켜세워준다.

처세술이라고 말이다. 저런 놈들은 똥과 같기 때문에 이후 상종할 가치가 없다.

``이라도 좋으니 대놓고 저지르는 놈은 인정하고 기꺼이

가까이 두고 사귈 수 있지만, 저런 병신은 그저 똥과 같기에 내 인생에서

피하고만 싶다.

 

그런 의미로 보자면 `유아인`이란 사람 또한 양호한 쪽에 속한다고 본다.

그가 쓴, 지금 인터넷상에 이슈가 된 SNS의 글을 보면 제법 그럴 듯하다.

 

-유아인의 글 중에-

"이제 48%의 유권자는 51%의 유권자의 결정을 인정해야 한다.

절망보다는 희망을 품어야 한다. 적어도 멘토나 리더라고 불리는 자들이

먼저 희망을 만들어야 한다. 과거를 각성하고 반성하며 앞날로 가야하는 것이

진보. 50%에 육박한 열망은 현재에 대한 불만과 변화에 대한 피상적인 염원이

투영된 결과다. 국민대통합의 약속과 마주하게 될 박근혜 당선자에게

그 약속 지키라면서 뒤로는 무조건적인 반대로 뻐팅기는 못난 짓 하고 싶지 않다.

선거 때 교차로마다 나붙었던 현수막의 약속들만 지켜도 더 나은 세상 될 수 있다.

100%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그녀가 몇 %나 해낼지 지켜보자.

약속은 꼭 지킨다니 그 약속의 책임을 믿음이란 무기로 그녀에게 강요할 생각이다.

필요하다면 응원도 할 생각이다. 대통령이 약속과 믿음을 저버린다면

국민과 역사의 심판대가 다시 그녀를 부를 것, 염세는 최악이다.

낭만이든 이상이든 그만 좀 현실 핑계하고, 제발 좀 '진보'해서 희망을 품어 보자"

 

언뜻 보면 참으로 아름다운 말아닌가?

51%의 선택에 48%는 따라야한다. 그게 `진보`고 민주주의다.

사회에 명망가들은 저명인사들은 헛소리 그만하고

51%에 48%를 더할 수 있도록 희망적인 메시지를 만들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슬픈 자들은, 살아가다 보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만나게 된다.

 

바로 그 51%가 만들어진 과정을 저 사람은 알고 있을까?

여기서 또 그 과정을 나열해야 한다는 말인가?

 

난 이런 자들을 보면 꼭 `종교쟁이`들을 마주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데,

그럴 것이 그들은 어쩌면 자신의 일생에 걸쳐 머리위에 얹고

살아가야할 `대상`에 대한 `공부`란 게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런 답답함에 그런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그야말로 `전도`하는 기분으로

`각성`을 꾀하고자 말을 섞어보면. 어느 순간 어김없이

그들이 만들어내는 난공불락의 담벼락과 마주하게 된다,

이런 느낌은 보통 늙은 꼴보들을 만나면 가지게 되는 감정인데,

이런 젊은 청춘이라니...

 

어쨌건 그 담벼락을 넘어가기 위해선 `공부`가 필요하다.

적어도 세 가지의 공부가 필요한데. 그건 그가 믿고 있는 `종교`에 관련한 공부와

그에 정통으로 반하는 `종교`에 대한 공부 그리고 그 둘을 깡그리 깨부술 수 있는

`상식`에 대한 공부. 이렇게 세 가지의 공부를 적어도 각성 시켜

새로운 하나의 ``으로 만들기 위해 바로 `그놈`의 신앙심 보다 더 깊이 공부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왜 이 병신을 위해서 이런 고생을 해야 하지?

저 놈도 안 하는 공부를 내가 왜, 대신해야 하는 거지?`

실제로 난 군대시절 저 짓을 했다. 하루 3시간 만 자가면서 저 짓을 했고,

나름 딱 그 놈의 신앙심보다 `한끗` 정도 높다란 만큼의 지식을 쌓았다 생각한  

어느 날, 날밤을 ``적이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

물론 나의 패배였다. `그놈`의 신앙심은 무식과 쌍벽이었음을 깨달았을 뿐이었다.

 

그 후, 대대군종이었던 그놈의 빈번했던 빈자리를

우리 분대원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되었다.

화가 났다기보다는 그날이후 난, 바로 `그놈` 덕분에 비약적인 깨달음을 얻게 되었고,

좀 더 넓은 배움의 장으로 나오게 되었다.

난 고졸이다. 졸업자들 중에 유일하게 학과관련 기초자격증조차

따지 못할 만큼 신나게 놀기만 했던, 또라이였는데

 `그놈` 덕분에 책이란 걸 읽기 시작했던 것이다. 

 

각설하고 바로 `유아인`이란 사람을 깨우치기 위해

또 다시 난 과거로 돌아가 바로 51%가 형성된 과정을 설명해야한다.

그 사람이 이 글을 볼 확률만큼 `선도`될 희망은 극악함에도

그 짓을 해야 하는 것이다. 실은 핑계일 뿐이다.

`유아인`을 설득하여 선도할 목적이 전혀 없다.

대신 이 글을 보게 될 적어도 `유아인` 한명보다는 많을

누군가를 위한 설득(글)인 것이다.

 

제국의 시대 정복자들은 식민지를 신설하면(?) 맨 처음

그 식민지에 하는 짓이 무엇일까?

폭력? 억압? 그건 하수들이나 하는 짓이다.

 

폭력과 억압은 등과 배가 맞붙은 가죽공에 바람만 집어넣는 짓이다.

계속 행하다 보면 결국 가죽공은 부풀어 올라 끝내 터지고 만다.

해서, 그런 통치는 저급의 하수들이나 하는 짓일 뿐이라는 것을

우리나라의 `보수`라는 것들 또한 그간의 경험을 통해

이젠 너무나 잘 알고, 알게 된 것이다.

 

`상수`의 정복자들은(꼴보) 깨닫게 되었다. 폭력과 억압, 그 공포만으론

아름다운 판타지는 건설 될 수 없음을 그래서 그들이 새롭게

시전 하는 권법은 문화의 침투다. 식민지 인간들에게 자신들의 문화를 맛보이게 한다.

 

마치 코카콜라가 대륙을 정복하듯, 공짜나 진배없는 값으로 모두에게

콜라의 맛을 보게 하는 것이다. 언제까지? 바로 중독 될 때까지.

침투는 다방면으로 이루어진다. 종교의 탈을 쓰고

교육의 탈을 쓰고 공연의 탈을 쓰고 의식주 전반에 걸쳐 조금씩 그러나 빈 곳 없이.

 

우리의 `보수`라 불리는 꼴통들 또한 그들만의 천년왕국을 건설하기 위해 바로 지금도

열심히 그런 짓을 행하고 있다. 방송을 점령하고 뉴또라이를 통해 교육을 빙자하여

역사를 조금씩 그러나 빈틈없이 고쳐가고 있는 중이다.

 

이는 기성세대를 위한 작업이 아니다. 바로 천년왕국의 노예들을 위한

의식을 개조하기 위함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에 그릇된 역사의식을

심어주게 된다면 10년이 아닌, 한 세대가 편안해진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이런 걸 예로 들자면 손가락이 부족하다.

 

바로 그렇게 만들어진 51%라는 걸 깨우쳐주기 위해 손품을 팔아야한다.

`유아인`이 알아먹든 어쩌든 간에 이 글을 혹시 볼지 모를 그대들을 위해

기꺼이 그럴 수도 있지만...

 

50%에 육박한다는 열망은, 바로 `유아인` 그대처럼 무지에서 비롯된

열망 아닌, 욕망일 뿐이다.

공약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그저 집값걱정에, 그저 세금걱정에

그런 자신들의 욕심에 대의는 저버리고 저울질한 것일 뿐이다.

그대가 말한 바로 그 `투영`의 비추어짐이란.

한 쪽엔 욕심을 올리고 다른 한 쪽엔 무지를 올려놓았을 뿐인 것이다.

 

어느 기사를 보니 연령별 투표율 중, 50대 투표율이 89.9%로 가장 높았다고 한다.

그중에 62%이상이 1번을 찍었고, 그런데 그 이유가 대부분 `세금걱정` 50대 이상은

방송3사와 찌라시 `병신신문`덕분에 무지해진 어른들의 걱정 때문일 테고,

허긴 사리사욕도 짙어지면 나름 열망은 될 수 있겠군?

`탐욕`이 어울린다 여기지만, 뭐 그대처럼 그 모습이

열망적으로 보이는 자들도 있을 테니.

 

그댄 그저 안타까울 뿐이겠군? 51%도 넘었을 수 있었을 텐데

투표시간 꼴랑 2시간 연장 하고 死대강 예산에 일억 만분의 일만 적선했더라면

그럼 그대가 바라는, 그녀가 외쳤던 100%에 좀 더 가까워졌을 테니 말이다.

 

국민대통합의 약속과 마주하게 될 박근혜 당선자에게 그 약속 지키라면서 뒤로는

무조건적인 반대로 뻐팅기는 못난 짓 하고 싶지 않다.

선거 때 교차로마다 나붙었던 현수막의 약속들만 지켜도 더 나은 세상 될 수 있다.

100%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그녀가 몇 %나 해낼지 지켜보자.”

 

`무조건적인 반대로 `뻐팅기는` 못난 짓 하고 싶지 않다.`

이 구절에 놀라서 `몇 년생이지?` 하고 프로필을 검색했더니

1986년 만26세로 나오더군. 그대를 발견하고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이었어

맞아! 무조건적인 반대로 일관했던 시절이 있었지. 그러고도 모자라

날치기로 연명했던 시절도 있었지, 우리역사에 분명 그런 날들이 있었어.

 

약속은 꼭 지킨다니 그 약속의 책임을 믿음이란 무기로 그녀에게 강요할 생각이다.

필요하다면 응원도 할 생각이다. 대통령이 약속과 믿음을 저버린다면

국민과 역사의 심판대가 다시 그녀를 부를 것.”

 

그런데 말이야. 너무 그대 글엔 모순이 많은 거 같아. 1번과 2번이 다르고 3번은 또 다른데

어찌 저런 결론을 얻어낼 수 있는 거지? 무조건적인 반대로 `뻐팅기는` 짓은

분명 과거에 있었던 일인데 그렇다면, 과거 어느 누가 믿음을 약속을 저버렸다고

국민과 역사의 심판대에 오른 자가 있었기에 저런 성급한 결론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거지?

그대 나름의 열망인가?

 

.. 선도를 위한 목적이라지만 갑자기 귀찮아지는군.

사실 아까 오해받을까 말하지 않은 게 있는데, 대대군종과의 대화에서

패배했다 생각한 것은 귀찮아서야. 문답무용이란 걸 깨닫고 

급격히 귀찮아지면서 흥미가 떨어졌기 때문인데,

그건 갑자기 똥을 피하는 심정이 되었기 때문이었지.

 

지금처럼 `한낱 똥덩이 하나로 인해...`가 되어버린 거야.

그래서 세상에 `저런 놈도 있구나` 라는 걸 알게 되었고

급기야 인정해준 꼴이 되어버린 것이고

똥으로 인정받은 그 녀석은 지금 `무얼하고 있을까?`

가끔 생각나기도 하는 수준에 버려진 이젠 그저 희미해진 억지로

지금처럼 떠올려야 `아! 그때 그런 병신이 있었지`할 뿐인.

 

오해는 마, 난 지극히 평범한 종교행위에 평온을 얻는

보통의 종교인들은 누구나 존경하니까

단지, `적당선`을 넘은 병신들에게 가차없이 `욕만` 할 뿐이니까.

`열망` 있는 바로 그런 놈에게만.

 

`말이 안 통하니 설명할 길이 없다.`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그냥 `욕`이란 `말`을 해도 그게 욕인지 칭찬인지 모르거든

그냥 지할 얘기만 할 뿐이지, 마치 외운듯 물어오는 답변에...

그런것들은 그래.

 

실로 준비한 말이 많았는데 절반은 삭제했어

나도 그대처럼 `내일`을 해야하기 때문에.

요즘 눈도 오고 춥고 `공구리`가 안 비벼져서 뒹굴고 있지만...

 

`멘토와 리더들은...` 맞아. 바로 그래서 그댄

`멘토와 리더`라는 축에도 못 끼는 거야.

그대가 걱정하는 바로 그대의 나이완 전혀 상관없어

단지 그뿐이야. 허무한 똥과 같은 외침. 나이가 어려도 생을 걸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발언`은 할 수 있는 거니까. 바로 나처럼 그리고 누구나.

틀린 걸 가져와 바른 걸 고치려고 하는 한, 그렇다는 거니 섭섭해할 필요는 없어.

 

그럼 도대체 `니눔`이 주장하는 바는 뭐냐고?

, 대안언론을 더 활성화하고 싶어, `한겨례`처럼 국민주를 모으는 거지.

그래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못된 늙은이들에게 물들지 않도록 그들만은

이념으로 사상으로 남북으로 동서로 나뉘지 않게 하기 위해 참된 정보만 사실만

듣고 보고 판단할 수 있도록 말이야.

 

요즘은 과학이 발전해서 저마다 손마다 가지고 다니는 세상이니까.

그리고 `우리들만의 리그`를 만들고 싶어 물론 `그들만의 리그`에서 정해주는

모든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 우리만의 룰을 만들어 가는

범국민적인 행동을 실행해 옮겨야 한다고 생각해.

그렇게 지금 우리 세대는 어쩌면 변화시키지 못할 대한민국의 희망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걸어보자는 거지. 사람도 자연도 스스로를

치료하는 능력이 있거든.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옳고 그름은 바로 그대가 말한 과거를 통해 얼마든지 가르칠 수 있는 거니까.

 

과거는 미래를 투영하지 그대는 잘 모르겠지만, 바로 지금을 비춰볼 수 있는

쌍방의 거울이 과거란 거야. 그런데 우리가 가진 거울은 똥과 오물로 범벅이 되어

제대로 현실을 비춰주지 못하고 있어. 물론 그대는 잘 모르겠지만.

해서 제대로 된 과거를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기만 해도 아이들은

사회에서 생겨나는 여러 가지 병폐를 치료하게 되겠지. 바로 과거란 거울을 통해.

그건 마치 경험과 같은 거야.

`이 길로 갔더니, 그때 이랬었지.` 이런 걸 보통 경험을 통한 깨달음이라고 하지.

뭐 경험이란 게 그리 대단한 게 아니잖아?

역사는 바로 그럴 때 써먹으라고 있는 거니까.

 

제대로 된 역사를 우리가 쓰고 가르쳐왔다면,

그대가 말하는 그 51%의 열망이 가당키나 했을까?

그리고 그대처럼 그런 헛소리를 아름답게 외치는 젊음이 있었을까?

그건 그대의 잘못이 아니야. 그건 모두 속절없이 늙어버린 열망들의 잘못일 뿐이지.

그래서 갑자기 시시해진 거고 나는. 그래도 진정 똥을 싸는 심정으로 이런 글을 싸는 이유는

묵은똥은 싸내야 하고 누군가는 그 밑을 깨끗이 닦아내야 하기 때문이야.

이 글은 똥닦는 신문지와 같아

 

그래도 그대와 맞장구는 즐거웠어. 뭐, 혼자 씨부린 꼴이지만 

`가타부타` 외쳤기에 난, 놀아줄만 하다고 여겼고. 이렇게 씨부리고 있어

그랬더라면 이렇게 취급도 안 해줬을 텐데.

 

나 말고도 아마 그대가 좀 더 세상을 살아가보면 

그대를 일깨워주려는 열망 많은 훌륭한 사람을 분명 만나게 될 거야.

그때도 부디

지금처럼 그 대자대비한 마음을 잃지 않은 청춘으로 건재해주길 바랄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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