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 정말 무서운 건 그림자처럼 따르는 병마 따위가 아니다.

물론 가난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명` 보다는 일찍

북망산에 오를 순 있겠지만 어차피 인간은 누구나 죽기마련이고

적어도 그건 만인 누구에나 평등하다.

 

가난이 정말 무서운 건 오늘과 같을 내일이 의미없이 

열린다는 무료. 따분한 공식 또한 아니다.

언제부턴가 희망을 `돈`으로 살 수 있게 된 후로 꿈 또한

시시한 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본 가난의 정말 무서웠던 얼굴은...

가난은 그게 그런 줄 모르고 무식을 밥그릇 고스란히 담아 

퍼먹고 살아가는 것에 있다. 바로 무식의 대물림 21c

그보다 더 무서운 가난은 없다.

`절대`하여야  `절대`할 수 있는...

 

노예제. 왕정이 사라진 후 인간을 나누는 기본다위는 바로 `무식`이다.

 

무식을 든든히 퍼먹고 오늘도 일선에 나선다.

부닥치는 모든 불합리는 그저 

` 이게 인생이지, 이게 살아감의 전부지`라며 자위하며 

묵묵히 참아낸다. 바로 그때 처자식은 좋은 핑계요 숨구멍이 된다.

뭉개진 무너진 짓밟힌 것들의 안식처.

 

살보다 빠른 정보의 시대 

무식은 공포보다 더 무섭게 전염된다.

씩씩하게 버틴 하루 돌아온 저녁식탁에 모여앉은 그들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무식을 늘어놓는다. 

자라나는 아이들은 그들이 들려주는 영웅담을 토대로 나름의 세계관을

만들어 입곤 자라나 세상에 나가게 된다. 그럴싸하게 포장된 `인내`라는 

노예도덕을 멋드러지게 입고는 말이다.

 

대상이 `나`일 때의 인내와

그 대상이 `타`일 때의 차이 따윈 무식에겐 알바아니다.

 

무식은 민주주의에 있어 암덩이다.

무식은 민주주의에 무임승차하는 걸뱅이다.

 

보라.

무식이 저지르는 악을

악의 순수성이란 바로 무식에 기생하여 공생한다.

 

나를 대신한 뙤약볕 아스팔트 위에 외침을 향한 손가락질을 `빨갱이`

나를 대신한 엄동설한 물대포 불의 앞에 단발마 비명을 향한 손가락질을 `빨갱이`

 

그렇게 피땀흘려 나자빠져간 자들이 얻어낸 

임금인상. 노동법개선. 최저임금. . . 

그 혜택을 고스란히 누리기만 했던 무식들은 그걸 본인들의 `인내`가 

만들어냈고 얻어낸 것이라 철썩같이 믿고 살아가다 뒈져간다.

그리곤 그걸 지혜라 믿고 자식들에게 가르친다.

 

참고 인내하다 보면 저 모퉁이 돌아 파랑새는 있다고.

...

무식은 이처럼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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