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에 이르러 가공되지 않은 진실이 존재한다는 믿음은

어느 날 세월이란 먼지를 머금고 있는 사서를 들추다 

거기 나열된 기록을 보며, 그 시대를 가타부타 단정짓는 것과 같다.

사관의 지극히 주관적인 검열에 살아남은 기록을 진실이라 믿는 짓 말이다.

 

범람의 시대 그 물살은 빠르다.

누군가는 너무 많은 정보의 바다 속에 진실이 수장될 것을 걱정했다.

 

범람의 시대, 오로지 나의 걱정은

저마다 스스로를 진실이라 외치며 두 손 번쩍 들고 

첨벙이는 것들 앞에 옥석을 가릴 수 있냐하는 `나` 그 하나뿐이다.

 

가공되지 않은 `사실`이란 존재할까?

사관에 의해 알맞게 걸러진

권력에 의해 알맞게 요리된

또는 시대의 요청으로 다듬어진.

 

그런 모든 것들이 적당한 세월을 먹고 자라나면

누군가엔 사초가 되어 성과를 가져다 주고

누군가엔 모범이 되어 안락을 가져다 주고

누구가엔 해법이 되어 정답을 가져다 주고

 

범람의 시대 그 물살은 빠르다.

그 빠른 `파고` 사이를 들락이는 저마다의 진실을 싣고 나르는

배는 점점 더 빠를 수밖에 없는 지금.

 

나의 더 큰 걱정거리는

빨라진 만큼 `나`의 사고 또한 빠르게 짧아져간다는 것이다.

어쨌건 떠내려갈 수는 없는 것이다 보니.

 

충분한 은유와 함축이 대신할 줄 알았던 세상은

그리고 사람은 하나 둘 사라져가고 그 자릴 보기 좋게 차지한 것은

위트라 추켜세워주는 날림, 그 천박한 가벼움 뿐이라는 것이다.

은유는 시간이 숙성시키는 예술인데 우린 빠름에 그 시간을 빼앗겨버렸다.

 

그 빠름으로 인해 이제 인간은 모든 걸 숫자로 환원할 수 있게 되었다.

소수 이하는 버리거나 반올림 할 수 있을 정도로 천박해진 것이다.

반올림 되어 행복하거나 탈락하여 불행하거나

버려지게 되어 행복하거나 쪼개지며 불행하거나

그게 뭐든 어디로 가든 뭉뚱그려 사라진 `나`는

범람의 시대 여기도 저기도 조각나 넘침에 파 묻혀 흐르게 된 것이다.

`우리`라는 불필요한 소수로

 

내 걱정의 해답은 언제나 

우리 마음속 바로 거기 반드시 `왜`라는

물음표 하나 깎아 돛을 세워 만들고 생을 살아내자는 것이다.

파고와 파장 일엽편주 떠밀려가더라도 

무작정 범람의 시대 포류하진 말자는 것이다.

끝내 뭍에 가닿지 못 하더라도...

내가 개척한 항로가 실패의 길이 아닌

누군가에 사료가 될 수 있도록

마주하는 별-별마다 `왜`라는 닻을 내렸다는 기록을 남기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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