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루한 내겐 세상 모든 걸 노래할 수 있는
검붉은 악기하나가 있었다네
내 안 속삭임에 이끌려 미친 듯 써 내려갔던 노래들
깨진 창틈마다 조각조각 오려 붙힌 빛바랜 얘기들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 그 누구도 불러주지 않은
끝내 나조차 알 수 없었던 그렇게 먼지 소복 쌓여간
뭐 꼬락서니 이젠 내게 딱 어울리는 찌꺼기들
피를 갈망하는 악마처럼 심연은 울렁이고
환호에 굶주린 그게 나인지 이게 너인지
알 수 없는 끈적임만 노래하라고 노랠 부르네
잠들지 못하는 괴로움에 너를 울러메고
초라한 무대는 없다 생각했건만
하필 바람이라니 장막은 찢겨 휘말려 춤을 추고
횃불은 뿌연 김만 토해내는 하필 그 겨울이라니
뭐 꼬라지가 이젠 제법 잘 어울리는 따라지가
나의 한계인가 너에 잘 못인가
손발톱 빠알갛게 물들였던 이 물음에 지쳐갈 때
그만두자고 그만 하자고
김 빠진 몇 잔에 너를 팔고는
취한 김에 불이 될까 망한 김에 찢어발겨 흩어질까
(남은 길은 더 걷지 않아도
오는 내일 더 보지 않아도 뻔할
쉬어갈 노래도 없이 이젠
기대잘 노래도 없이 더는)
묘갈명에 내 노래
*그 누구도 건들지 못하게 부르지 못하게
이 몇 줄이면 어느 구덩이 깜깜해도 바람 따라 흐르리라
*그 몇 줄이면 아무 구덩이 쓸쓸해도 다시 오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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