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S의 항변

"경쟁을 통한 발전, 그 합당성에 대해"
노인의 백발에 스며든 햇살은 은백으로 부서지고 있었고 안경알에 튕겨져 나온
빛은 한 쪽 벽면에 오색의 무지개를 만들었다.
"말을 끊어 미안하네. 자네가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더라면 모르겠어나, 그 말은
입 밖으로 이미 쏟아져나와버렸네. 먼저 그 얘기의 답을 하자면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네."
백발의 노인 앞에는 숱이 얼마 남지 않은 구부정한 노인이 앉아있다. 성이 날 때마다 깨문 탓에 이젠 찌그러져 잘 빨리지도 않는 담뱃대 구멍을 송곳니로 어떻게든 넓혀 몇 모금 빨아 목구멍에 집어넣겠다고 딱딱소리를 내다 마음먹은 듯 안 되니 담뱃대 속에 든 담뱃가루를 재떨이에 비워내곤 담뱃대를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백발의 노인은 손에 든 책을 책장에 꽂아놓고는 빙그레 웃는다. `자네 머리통에도 무지개가
있네, 또 저 영감이 무슨 억지를 부릴려고 그러는 거지`
"만물의 이치, 그 조화가 음양에서 비롯 된 것이라고 우린 알고 있고 그런 상식에 의해 누천년을 살아왔네. 물론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고 말이야. 사실 음과 양 단, 두가지만 있는 게 아니지만 그건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며, 그 또한 내가 지금부터 설명하고자 하는 범주에 이미 포함 된 것이라 더 말하지 않겠네."
백발의 노인은 이번에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 허리를 곧게 한다. `그래, 오늘은 어떤 핑계를
얼만큼 가져다 붙이곤 백기를 드는지 봐야겠어` 백발의 노인이 자세를 다잡자 맨머리의 노인은 차를 급하게 한잔 꿀꺽인다. 

"태초 음양의 경쟁에 의해 하늘이 열리고 땅이 생겨나게 된 것이라고 여기나 음과 양은 본시 한 덩어리라고 나는 생각한다네, 둘이 갈리며 흩어진 그 때를 개벽이라고 하지 않나 말이야
헌데, 얼핏 들으면 바로 그것이 경쟁 즉, 다툼으로 인한 분리인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그건 전혀 그렇지가 않아. 그게 다툼에 의한 분리라면 그들은 서로 각기 다른 목표를 가지고 이 땅에 와야하며 우리 인간 또한 그렇게 인식하며 살았어야 했겠지. 허나 그 다툼의 목표는 언제나 하나야 바로 상생이지, 상생이 뭔가 그건 다른 의미로 보살핌이네. 보살핌에 행여 틈이 있다손 치더라도 거기 다툼이 끼어들 자리는 없네. 보살핌의 틈바구니엔 채움과 나눔만 있는 것이니 그게 바로 조화라는 것이지. 어쨌건 음양은 결국 상생이라네. 결코 다툼을 수단으로 각기 다른 목표를 가지고 열린 하늘과 땅이 아니라는 얘기라네."
백발의 노인은 그렇게 한참을 찻잔을 입에 댄 채로 있는다.
`오늘은 자네가 자네 꾀에 빠지겠군. 저번에는 부러 내가 자네 말에 동의를 해준 걸 모르나보군, 그날은 내가 물러서야 분명 자넨 날 궁지로 몰았다 여기고 오늘의 그 문제를 꺼낼거라 진작에 난 알고 있었단 말이야.` 담뱃대를 다시 주섬주섬 꺼내며 아까 백발노인의 미소를 흉내낸다.
음양이 갈리며 하늘과 땅이 생겼다는 자체가 이미 그대가 얘기하는 상생과는 다른 게 아닌가? 상생이라면 흔히 다른 두 개의 개체가 하나로 뭉쳐가는 것을 뜻하는 것인데, 나뉘어 갈렸는데 어찌 거기 상생이란 말이 어울릴 수 있지? 태초 음양의 경쟁에 의해 하늘이 열리고 땅이 생겨난 것은 아닐지도 모르지, 그러나 베큠이란 그 속에 무언가를 포함될 수 없다는 논리는 고루하다는 의견에 자네를 따라 나도 한 발만 동참하겠네."
탁 하고 재떨이를 내리치며 `걸렸구나!` 맨머리의 노인은 강태공이 오랜 사투 끝에 월척을
수면 위로 잡아채듯 담뱃대를 내리치며 엉덩짝을 풀썩인다.
"아니네. 난 그 주장을 철회했다네, 곰곰히 집에 돌아가 생각을 해봤네만, 결국 그건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으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지. 완벽의 진공이라도 그 속엔 지금 과학으론 발견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으리라고 나는 생각하게 된거라네. 천지간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란 도저히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이야 당연하지 않겠나? 그런 게 있다면 그곳이야말로 천당과 지옥 이지. 염치없는 일이야 적어도 학자의 입에서 그런 말을 한다는 건"
`저 영감탱이가 저때문에 이슬을 밟고 이 새벽을 달려온 거로구만` 
"아니, 그렇게 불리하다 해서 명제를 벗어나면 논쟁을 할 수 없는 거 아닌가?"
"무슨, 그런 말을 다 하는가? 명제는 분명하네. 단지, 내 주장을 수정했을 뿐이야. 보완이라고 
하지들 않나? 난 바로 그걸 했을 뿐이네 명제는 아직 또렷하다고"
백발의 노인은 더는 여유로울 수 없었다. 백발의 노인이 유일하게 공격할 수 있는 민머리 영감의 유일한 허점을 어이없게도 저런 식으로 고쳐서 나온 것이다.그러나 물러설 수 없었다.
뻔뻔함에선 민머리 영감처럼 두꺼움이 얇기 때문에 백발의 노인은 잠시 어금니로 녹차물을
깨문다.
"자네의 그 고집은 받아드릴 수 없지만, 내 양보하도록 하지. 자네 말처럼 순수한 진공의 상태가 있을 수 있을까? 그럼, 우린 그것의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못해야 정상이겠지. 헌데 은연중에 우린 알고 있으니 다분히 가짜일 가능성이 있다네. 그렇지, 역시나 자네의 궤변은 놀랍군
따지고 들 유일한 통로를 며칠 새 이렇게 어이없게 막아버렸군, 그래서 자네의 그 얼마없던
머리털이 더 휑하게 보였나보군. 글쎄, 오늘 아침 자네가 문을 들어서는데 뭔가 달라보이나 싶더니 그거였어 바로 그거였어"
민머리 영감의 머리통이 햇살 때문인지 붉게 물들어갔다. `당혹스럽겠지. 하하하. 그래도 별수는 없을 거야. 그렇게 내 화를 사려고 하겠지만 넘어갈 수야 없지` 
"하하하. 자네 어지간히 급했나보군. 내 머리털에 언제부터 그리 관심을 가졌다고 실없는 소리 말고 계속하세나"
`음양에는 음중양 양중음 중중음 중중양 ... 역으로 들어가 궤로 나누고 중탁과 청양 읊조리겠지 어쩌면 상생이란 둘이 하나가 되어가는 것이니 만큼 음과 양이 각기 다른 기운을 가지고 버무려지는 과정일지도 아니야 왜 음과 양이 애초 둘이었다고 생각하지 정과 신을 따로 놓고 볼 수 있을까 음...나뉨이라`
백발의 노인은 생각하다 말고 괘씸하다는 억울함이 전신을 눌러왔다. 반격을 할 수 없는 논리를 꺼내들고 그것도 애초 본인 주장의 씨앗이 되는 근원을 저렇게 간단한 몇 마디로 뒤집어 버리곤 능글맞게 담뱃대나 빠는 늙은이에겐 절대 물러설 수 없다는 생각. 그리고 이대로 더 끌고 가다간 패배할 수밖에 없는 현상황을 어떻게 돌파할 수 있을까란 생각에 휩싸였다.
" 자네가 날 다시 찾은 건 정확히 사흘이었네. 그렇다면 공평하게 자네 또한 내게 사흘의 시간을 줘야한다고 생각하네. 아울러 내가 다시 자네의 집을 찾았을 때, 나도 자네와 마찬가지로
내 씨앗을 옮겨 심을 것이네. 어떤가?" 
`하하하. 그렇게 나올 줄 알았네. 사흘 아니라 삼 년을 줘도 자네는 날 이길 수 없을 거야.`
"정말인가? 하하하. 얼마든지 그렇게 하게 그럼 사흘 후에 자네를 위해 최상의 녹차입을 
직접 구해서 기다리고 있겠네. 하하하. 그러나 자넨 이번에 빠져나올 수 없을 것이야. 난
오늘 여기와서 딱 한마디 한 것이 다이네만, 정작 내가 준비한 것들은 꺼내놓지도 못 했다는 걸 자넨 알아야할 거야
배웅을 끝내고 돌아선 백발의 노인은 서재로 들어가 문을 닫아 걸었다.
사실 이 두 노인은 이렇게 서로의 지식을 겨루고 있은지 어느 덧 10년이 지나고 있었다.
이젠 무엇 때문에 이렇게 기나긴 사투를 벌이게 되었는지 서로 모른 채 자그마치 10년의 세월이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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